여자의, 여자에 의한, 여자를 위한 브랜드, 〈Wildf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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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f(x) 멤버인 엠버는 솔로곡 '보더스(경계)'에서 소년 같은 모습으로 뮤직비디오에 나타난다. 목덜미가 다 드러날 정도로 짧게 자른 머리에 헐렁한 검은색 반팔 티셔츠와 긴 바지를 입고 있다. 여성스러운 매력을 발산하기 위해 안달하는 걸 그룹 사이에서 그는 줄곧 이런 모습이었다. 데뷔 때 사람들은 "엠버가 남자냐, 여자냐"고 궁금증을 가졌을 정도. 그는 한국 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 10~20대 여성팬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문명의 변화에 따라 이분법적으로 나뉘었던 성의 경계는 점점 무너져가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성적 중립성’을 지닌 단어를 싣고, 트랜스젠더나 자신의 성을 밝히길 원치 않는 사람들을 위해 ‘Mx’라는 단어를 추가하겠다고 하였다. 스웨덴 학술원은 그러한 사람들을 지칭할 때 남자(Han)나 여자(Hon)가 아닌 대명사 ‘Hen’을 쓰기로 했다. 뉴욕타임즈 역시 '그(he)' '그녀(she)'처럼 성별을 드러내는 지시대명사를 없애고, 이 둘을 하나로 통합하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인간을 남성이나 여성 둘 중 하나로 규정지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최근의 대세이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 라이프를 표현하는 의류'라는 개체의 특성상 패션 브랜드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러한 흐름이 지속되어왔다. 80년대, 컬쳐클럽의 보이 조지나 듀란듀란의 닉 로즈의 메이크업과 파격적인 옷차림으로 대변되는 ‘유니섹스(Unisex)’, 90년대, 디자이너 앤 드멀미스터, 헬무트 랭, 질 샌더의 창백하고 전위적인 의상- 누가 입어도 남자든 여자든 다 똑같이 보이게끔 하는-덕분에 ‘앤드로지니(Androgyny)’라는 키워드가 대두되었다. 2000년대, 에디 슬리먼의 디올 옴므에서 비롯된 ‘젠더리스(Genderless)’를 지나 2010년대엔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끝판왕(?) ‘성 중립(Gender-Neutrality)’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이렇듯 모든 영역의 경계가 희미해진 현시대에 성 구분은 ‘시즌리스’만큼이나 구태의연하게 여겨지게 됐다.

 

포틀랜드를 기반으로 한, 일명 ‘톰보이 패션 브랜드’라고 지칭하는 Wildfang. Wildfang의 의미는 독일어로 tomboy(개구쟁이, 말괄량이)라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2013년 3월 런칭한 이 브랜드는 런칭 3년만에 단순히 남성스러운 옷을 즐겨입는 사람들의 브랜드가 아닌, 여성, 게이(레즈비언)들의 목소리를 대신하여 여성다움을 온 몸으로 외치는 브랜드가 되었다

 

Wildfang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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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파슬리(Julia Parsley∙왼쪽)와 엠마 맥길로이(Emma McIlroy∙오른쪽)는 Wildfang의 공동 창업자이다. 그들은 오레곤에 위치한 나이키 본사에서 직장 동료로 만나게 되었다. 본인들의 성향이 동일하다는 것을 알게 된 둘은 공동체 운명을 직감하고 절친이 되었다. 그들 사업의 시작은 이러하다. 함께 쇼핑을 나간 어느 날, 엠마는 케이트모스의 누드 사진이 프린트 된 티셔츠를, 줄리아는 팔꿈치에 패치가 붙은 남자 블레이저를 집었다. 그 때 둘은 동시에 “왜 우리를 위한 옷을 만들어주지 않는 거야?”라는 불만을 토로했고 우리와 같은 성향의 여성들을 위한 의류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이키에서 이미 다양한 소비자 경험을 했지만 정작 우리들과 같은 소비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토로하며 조사에 들어갔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들도 우리 생각에 동의할까?’.

 

조사가 끝난 후 그들은 두가지 확신을 얻었다. 누구도 즐겨가는 쇼핑 장소가 없었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어디서도 내가 원하는 옷을 파는 곳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남자친구의 옷을 입거나 심지어는 할아버지의 60년대 군용 자켓을 훔쳐 입어야만 했다고 응답했다. 그들은 소비자들의 욕구를 확신하고 ‘여자 몸에 잘 맞는 남자 옷’, 바로 ‘톰보이 브랜드 개발’에 착수했다. 기존에 ‘톰보이 스타일’을 표방한 브랜드가 전혀 없진 않았다. 특히 2010년 이후 시류에 따라 유행처럼 앤드로지니/젠더리스 브랜드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러나 종종 화제를 불러온 브랜드만 존재할 뿐, 지금은 소멸 또는 어설픈 브랜드만이 겨우 남아있는 상황이다. 워낙 소수 타깃인데다 그마저도 페미니즘을 아예 대놓고 표현해 타깃들마저도 부담스러운 브랜드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1] Wildfang은 그래서 단순히 스타일만을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톰보이’라는 개념 자체를 라이프스타일과 결합하여 재정의하고자 했다.

 


 

Wildfang의 성공

 

Community & Experience

 

Wildfang을 언급할 때 절대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포틀랜드(Portland). Wildfang이 태어난 포틀랜드는 두 창립자가 처음으로 만난 곳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그들은 브랜드가 이 도시로부터 시작되었고 이 곳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것을 굉장히 자랑스러워 한다. 포틀랜드는 미국에서도 친동성애적 도시로 손꼽히며 그러한 자유분방한 도시 분위기는 이 브랜드와 아주 잘 어우러진다. 그 밖에도 포틀랜드 출신의 다양한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 활동을 통해 브랜드 오리진을 더욱 확고히 하고있다. Wildfang은 온라인 스토어로 시작하였지만 얼마 안되 수많은 고객들의 요청에 힘입어 플래그십 스토어를 선보인다. 제 1호 매장 역시 포틀랜드에 위치한다. 매장의 가칭은 ‘톰보이들의 집(The Home for Tomboys)’. 그들은 이 포틀랜드 매장이 단순히 제품을 제공하는 매장이 아니라 어반아웃피터스(Urban Outfitters)가 힙스터들의 집이 된 것처럼 고객(성 소수자)들이 와서 즐기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동체(community)를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Wildfang 매장의 특별한 점은 당연히 남성과 여성 제품의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매장은 포틀랜드의 진보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 구분없이 자유롭게 쇼핑을 경험하고 상호 교류할 수 있는 장소가 되어준다. 최근에 개장한 2호점은 화이트 아울 소셜 클럽(White Owl Social Club)이라는 가장 힙한 펍 레스토랑과 맞닿아있는 형태로 성 소수자 파티, 발언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커뮤니티를 더욱 더 확고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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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rity & Campa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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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dfang이 초기에 화제를 불러모았던 것은 유명인(Celeb)의 등장이었다. 정식 온라인 스토어가 오픈하기 전 그들은 홈페이지 메인 페이지에 동영상 하나만을 업로드 했다. 이 영상에 출연한 배우는 레즈비언의 이야기를 그린 ‘L-Word’라는 유명 드라마의 주인공 캐서린 뫼닉(Katherine Moennig)을 비롯, 가십(Gossip)의 드러머 한나 브릴리(Hannah Blilie), 프로축구선수 메건 라피노(Megan Rapinoe) 등 동성 또는 양성애자였다. Wildfang은 이들이 단순히 유명인(또는 게이)이라서가 아닌, 그들의 강하고, 굳센, 독립적인, 그리고 룰을 깨트릴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생각했으며 이러한 이미지는 곧 Wildfang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와 소명에 완벽히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제품 판매가 전혀 되지 않는 첫 달에만 3만 3천명 가량을 메일링에 가입하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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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단순한 런칭 광고가 아닌, 성 평등 프로젝트의 출발로 여겨진다. 유명인들 역시 단순 모델로서가 아니라 사회 편견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기꺼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전개된 에반 레이첼 우드(Evan Rachel Wood)의 에반 레이첼 ‘우드’(Evan Rachel ‘Would’)캠페인은 성 소수자로서 살아가며 삶에서 마주하는 편견에 ‘담대하라(be fearless)’는 스토리로 연이은 화제를 낳았다. 오래전부터 여성의 권리를 위해 묵묵히 힘써왔던 70대 여성들의 인터뷰[2]나 2015 여성 월드컵을 맞아 진행된 유소녀 축구팀의 인터뷰[3], 힐러리 클린턴 지지는 허핑턴 포스트, 코스모폴리탄 등 각종 언론에 소개되어 일반인들에게도 반감없이 브랜드와의 연결고리를 가져가고자 했다.

 

 

 

[1] *femalecollective(http://www.femalecollective.org/)

[2] 5 WOMEN WHO PROVE BADASS NEVER GOES OUT OF STYLE (http://blog.wildfang.com/5-women-who-prove-badass-never-goes-out-of-style/)

[3] GOT #GAMEFACE? (http://blog.wildfang.com/got-game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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